곳곳에 한옥의 미가 숨어 있는 곳
눈을 감고 바스락거리는 가을낙엽을 밟으면 시간에 쫓기듯 목적지를 향해 가던 발걸음도 어느새 느려진다. 시간을 먼저 보낸 뒤 저 멀리 보이는 감나무에서 감이 언제쯤 떨어질까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그래서 일까 최근에는 도심의 빠른 삶과는 달리 슬로시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도시가 늘고 있다. 문득 느림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천천히 걷다 오는 것이 느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슬로시티에서 만난 한옥에서는 느림도 배움이 된다.
대나무와 정자의 도시 담양에 자리한 삼지천 마을. 이 마을은 우리 전통의 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슬로시티다. 구불구불 소박한 돌담길, 오래된 한옥들로 옛 고향을 추억하는 삼지천 마을에서 현대인들은 여유로운 삶과 느림의 교훈을 몸으로 익힌다. 삼지천 마을은 1510년경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곳은 창평 고씨의 집성촌으로 대대로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마을의 동쪽으로 월봉산, 남쪽에는 국수봉이 솟아 있고, 마을 앞을 흐르는 천의 모습이 봉황이 날개를 뻗어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삼지천(三支川) 마을이라 불린다.
마을 전체가 돌과 흙을 사용한 흙돌담으로 꾸며져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3,600m에 다다른다. 담장에는 비교적 모나지 않은 화강석 계통의 둥근 돌을 사용하였다.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의 담장이 뒤섞여 있다. 대체로 담 하부에는 큰 돌이, 상부로 갈수록 작은 돌과 중간 정도의 돌이 사용되었다. 마을길은 전체적으로 S자형으로 자연스럽게 굽어진 형태로 되어 있다. 고택들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유려한 곡선을 보인다. 담장은 300여 년 전의 원형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마을 전체 담장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다.
김영봉 고택은 바로 이곳 삼지천마을 중앙에 있다. ‘한옥에서’라는 이름의 민박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집이기도 하다. 바로 뒤는 문화재로 지정된 고재선 가옥이 있고 왼쪽 담장너머에는 너른 들녘이 있다. 황토와 막돌로 쌓아올린 돌담길을 따라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그 가운데 오래된 안채 건물이 자리하였다. 정면 8칸, 측면 3칸의 웅장한 안채 건물은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5칸 크기의 마루는 각 방으로 연결되는 통로 구실을 한다. 이곳에 앉아 마당 쪽을 바라보면 가옥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 왼쪽으로 파릇파릇한 채소가 심긴 텃밭과 늙은 감나무가 있는데 덕분에 고택이 아늑한 시골집처럼 느껴진다. 낡고 고풍스러운 고택의 모습과 무척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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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 한켠엔 한옥에서 숙박체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숙박 건물을 지어 두었다. ‘ㄱ’자 형태의 한옥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4칸 분량의 ‘ㄱ’자 모양의 마루는 각각의 방으로 이동하는데 편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마당에 잔디를 깔고 이동로에는 돌을 박아 두어 잔디를 보호하면서 방문자들의 이동을 돕는다. 마당 군데군데 제법 질서 있게 박힌 돌들조차 고택에 있으니 멋이 있다. 창문과 방문에는 방충망과 유리창 그리고 한지를 바른 문을 같이 설치하여 방음, 방충, 보온이 되도록 하였다. 사람들이 머무르기 좋도록 꽤 신경을 썼다.
황토벽 그리고 나무기둥과 서까래, 대들보 등이 한옥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그 매력으로 눈요기 하고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잠을 청하자. 고택의 혈관에 뜨끈한 피가 돌면 몸도 제구실을 한다. 온기가 도는 고택의 품에 안기면 세파(世波)에 얼어붙은 마음마저 녹아내릴 듯하다. 이래서 한옥의 매력에 빠지는 이들이 많다.
고택 주변에는 온통 옛 것이다. 고택을 찬찬히 둘러보았으면 이젠 마을로 나서면 더 좋다. 슬로시티에서 조차 바쁘게 생활하는 것은 피하자.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이 마을에서는 천천히 걷고 들여다보고 또 만져 보면서, 전통의 멋과 어우러지는 소박한 자연의 풍경에도 눈을 맞추어 보자. 마을을 휘 돌아보면 너른 들판과 시골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흔든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 고택들을 볼 수 있어 더욱 좋은 마을길을 걸으며, 마을을 휘감은 돌담에 손을 스치며 천천히 마을과 고택을 음미해 보는 것이다.
*주변 관광지
죽녹원
담양군이 성인산 일대에 조성하여 2003년 5월 개원한 대나무 정원으로, 약 16만㎡의 울창한 대숲이 펼쳐져 있다.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총 2.2km의 산책로는 운수대통길·죽마고우길·철학자의 길 등 8가지 주제의 길로 구성된다. 죽녹원전망대로부터 산책로가 시작되는데, 전망대에서는 담양천을 비롯하여 수령 300년이 넘은 고목들로 조성된 담양 관방제림과 담양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
2002년 산림청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2006년에는 건설교통부에 의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선정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8.5km에 이르는 국도변 양쪽에 자리 잡은 10~20m에 이르는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장관을 연출하여 ‘꿈의 드라이브코스’라고도 불린다.
소쇄원
소쇄원은 조선 중종때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죽자 제자인 양산보가 은둔하면서 조성하기 시작하여 3대 70여년에 걸쳐 조성한 대원림이다. 조선중엽의 민간 별서정원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쇄원은 흙돌담 밑으로 계류의 물이 흘러 다섯 번을 돌아 흘러내린다는 오곡문,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재현한 복사동산, 물레방아가 쏟아내는 인공폭포 등이 있다.
대나무의 도시, 담양에서 만난 김영봉 고택! 느림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6년 02월 2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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