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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장릉]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냉혈한 인조, 반정을 도모하다.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仁祖, 1595~1649년)는 선조의 손자로 아버지 정원군과(훗날 추존왕 원종) 인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말하는 것이 진중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의 인조는 연산군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과 함께 반정(反正)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다만 중종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성희안 등의 반정 세력에 의해 추대형식으로 왕위에 오르지만, 인조는 자신이 직접 반정에 가담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야망을 품고 차지한 왕위에서 그에게 불어 닥친 것은 폐위된 광해보다 더한 굴욕의 시간이었다. 내부적으로는 함께 반정을 도모한 이괄의 난으로 혼란을 겪었으며 외부적으로는 대륙을 장악한 후금에 침략당해 씻을 수 없는 굴욕을 겪는다. 후대는 그런 인조에게 조선 역사상 최악의 군주 중 하나라 평가하며 혀를 찬다.   

                    
                
피눈물로 버틴 남한산성
 

집권한 인조는 첫걸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서인 세력과 함께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이괄이 2등 공신으로 책봉되면서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이괄은 반란을 통해 한양까지 함락시켰는데 내부적으로 일어난 반란으로서는 인조는 도성을 떠나 공주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한양에 입성한 이괄은 선조의 아들 흥안군을 왕으로 세우기까지 하지만 길마재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기세가 꺾였으며 결국 관군에게 죽임을 당해 난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서인세력과 함께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즉각 친명배금 정책을 실시한다. 무섭게 성장하는 여진족의 후금과 사대관계에 있었던 명나라 사이에서 조선의 앞날을 위해 중립외교(中立外交)라는 특단의 초지를 취했던 광해군의 정책과 정반대되는 행보였다. 중립외교정책은 실리와 명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 광해군의 묘수(妙手)였지만, 사대의 예를 중시했던 서인세력에겐 용납할 수 없는 처사였다. 하지만 이는 이괄에 난에 이은 또 다른 화를 가져왔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장릉.

이 무렵 국력이 날로 강성해진 후금은 대륙을 장악하기 전 조선에게 형제의 관계를 요구한다. 그러나 서인세력이 집권하고 있던 조선에겐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었다. 후금은 즉각 소리가 아닌 행동으로 조선을 압박했다. 더군다나 이괄의 난에서 후금으로 도망친 한윤과 한택은 멀쩡한 왕을 폐위시키고 즉위한 인조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조선의 병력이 보잘것없음을 밀고한다. 1627년 후금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니, 바로 정묘호란이다. 막강했던 후금의 군대는 평양을 함락시키는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최명길의 주장으로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예(정묘화약)를 맺게 된다.
 
하지만 국제 정세 파악을 하지 않고 명분에만 빠져있던 조선은 친명배금정책을 고집했다. 국호를 ‘청’으로 바꾸며 대륙을 차지한 후금은 조선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지만, 조선은 이를 거부한다. 청은 곧바로 10만이 넘는 군대로 응징을 시작했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청의 군대를 조선이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남한산성에 들어간 인조는 독 안에 든 쥐의 신세였다. 바닥을 드러낸 식량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 더는 버틸 수 없었고 인조는 1637년 1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로 예를 표한다. 청나라의 황제를 만났을 때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삼배구고두례는 양손을 땅에 댄 다음 이마가 땅에 닿을 듯 머리를 조아리는 행동을 세 번 반복한다. 조선이 오랑캐라 얕보던 변방의 나라에 당한 씻을 수 없는 굴욕의 순간을 우리는 병자호란이라 기억하고 있다.   

 

[트래블아이 왕릉 체크포인트]
인조와 그의 왕비 인열왕후가 함께 잠들어 있는 합장릉 형태의 장릉(長陵)은 본래 파주시 탄현면의 지금 위치가 아닌 파주시 문산읍에 있었으나 석물 틈 사이에 뱀이 집을 짓고 극성을 부린다 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추존왕 원종이 잠들어 있는 김포의 장릉(莊陵), 영월에 소재한 단종의 장릉(莊陵)과 이름이 같다. 

하나의 봉분으로 된 단릉 형태이지만, 그 크기는 약간 어색할 정도로 거대하다. 봉분 앞에 놓인 혼유석(무덤 안에 영혼이 나와 놀 수 있도록 만든 돌)이 두 개인 것을 알아챈다면 단릉이지만 무덤 속 인물이 둘임을 알 수 있다. 보통 봉분을 두르고 있는 병풍석에는 십이지상이나 구름무늬가 새겨진 것과 달리 파주장릉의 병풍석에는 모란과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대부분의 조선왕릉이 그렇듯 파주장릉 관리소도 역시 재실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파주장릉은 일반인들에게 자유 관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전에 관리소에 허가를 받아야 헛걸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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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삼전도 굴욕을 겪은 인조의 심정을 어땠을까 짐작해 보세요! 능 앞에서는 절로 왕의 삶을 상상해 보게 된답니다.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5년 07월 1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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