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안사,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서
대한민국은 불교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2만 개소가 넘는 사찰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현재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고대 삼국시대부터 고려 시대, 조선 시대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불교를 숭상함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지어진 사찰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오늘 [트래블투데이]에서 소개할 사찰은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도피안사다.
영원한 안식처, 피안(彼岸)
강원도 끝자락 DMZ에 인접한 철원군에는 도피안사라는 절이 있다. 도선국사가 1,500여 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산수가 좋은 곳을 찾다가 이곳에 이르러 이 터가 마치 영원한 안식처와 같다고 하여 도피안사(到彼岸寺)라고 이름 지었다. 영원히 머물러도 좋을 법한 이곳에 철로 된 철조 불상을 모시고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그 불상은 국보로 지정돼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산속 조용한 사찰, 하지만 그 깊은 기운과 뜻이 느껴지는 도피안사는 어떤 사찰일까?
불교용어인 피안(彼岸)은 현실을 말하는 차안(此岸)과 상대적인 개념이다. 생사의 경계에서 차안이 삶이라면 피안은 삶의 건너편을 뜻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죽음이 아닌 불교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세계,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도선국사는 강원도 철원 화개산 자락에 올라 이 자리가 마치 해탈에 이르러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안식처 같다고 했다. 또한, 이상의 세계로 가는 통로와 같다는 의미도 있다. 대부분은 도선국사가 지나던 중 이 땅을 택했다고 하나, 철조 불상을 가지고 이동하던 이들 무리가 잠시 쉬던 사이 불상이 없어져 찾아 헤매다 보니, 이곳에 불상이 놓여있어 사찰 터를 잡게 됐다는 설도 있다. 도피안사는 그렇게 세워졌다. 1,500명의 대중과 도선국사가 함께 철불을 올리고 삼층석탑을 쌓아 사찰을 창건했다는 것은 당시 종교와 민중의 돈독한 관계 역시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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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사가 창건된 시기는 통일신라 시대 경문왕 5년인 865년이다. 그러나 이후 도피안사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천년고찰의 역사를 지녔음에도 어떻게 보존돼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을뿐더러, 1898년에 이르러 큰 화재 때문에 전소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등장한다. 그 이후 재건됐으나, 한국전쟁 때에 다시 불타 폐허에 이르고 만다. 그리고 1959년에 한 장군이 땅속에 묻힌 불상 꿈을 꾸었는데, 우연히 도피안사 터에 찾아가게 돼 땅속에 묻혀있던 철불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의 도피안사는 이때 재건된 것이다. 이때 발견된 철불은 국보 제63호로 지정되었다. 도피안사가 총 세 번에 걸쳐 세워질 수 있었던 까닭은 역시 그 터에 피안의 영험한 기운이 깃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피안사를 지켜온 문화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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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가 봉했다는 그 철불은 여전히 도피안사를 지키고 있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피안사 철불은 91cm의 높이이며, 대좌까지 모두 철제로 이뤄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국보 제63호로 지정돼 있으며, 몸집이 크지 않고 얼굴 윤곽도 뚜렷하지 않은 9세기 후반의 철불의 대표적인 형태를 갖춘 유물이다. 철불의 형태를 자세히 보면 부처의 큰 기상이 느껴지기보다는 정감 있고 친근한 스님의 모습에 가깝다.
비로자나불은 진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상향에 도달하기 원하는 뜻에서 세운 도피안사에 이를 모신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앞서 말한 1,500명의 민중, 즉 지방 호족의 지지를 받아 세워진 사찰인 만큼 비슷한 형태의 사찰이 강원도와 전라도에 많이 조성됐고 각 지방의 양식을 따랐다. 친밀한 형태를 띠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본다.
도피안사 대적광전 앞에서 볼 수 있는 삼층석탑 역시 도피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다. 현재 보물 제223호로 지정돼 있으며, 특히 탑 아래를 받치는 8각 기단은 아주 특이한 형태이다. 이 8각 기단의 형식은 마치 불상의 대좌처럼 꾸며져 있는 모습이며, 이러한 형태는 국내에서 다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색적이다. 도피안사 삼층석탑 역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같이 지방 호족 문화에 따라 다양해진 양식 속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강원도 철원 도피안사에서 우리는 피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보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도피안사 삼층석탑 등 진귀한 유물과 마주하면 그 옛날 수많은 불교 신자들이 뜻을 모아 만들었던 이곳이 과거 천 년의 시간을 여행할 열쇠가 될 것이다. 잠시 복잡한 세상을 멈춰두고 불교의 이상향과 삶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보자. 여행에는 길이 되는 법. 철원 도피안사 역시 그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니.
강원도 철원, 나지막한 화개산 자락의 도피안사에서는 천 년 전부터 지켜진 신비한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7년 08월 16 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