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말산 자락에 묻혀있던 선조들 유물 재발굴해

• 

  한옥박물관 외부에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석물과 신라시대 기와가마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의 잔디밭에는 주인 모를 석물들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은평 뉴타운 공사를 진행하면서 수습한 무덤에서 나왔던 석물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대부분 이말산이라는 북한산 능선에서 나온 것들로 추정 시기가 조선시대까지 올라간다. 이렇게 많은 석물이 발굴된 이유는 이말산이 조선시대 내시와 상궁들이 주로 묻힌 곳이었기 때문이다. 도성에서 10리 안에는 무덤을 쓸 수 없다는 ‘성저십리’의 규칙에 따르자면 이 구파발 일대부터 무덤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 구파발은 다른 지역에 비해 궁궐 가는 길이 편리해 이 지역에 묻히는 것이 매우 빈번했던 것이다. 이렇게 지금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석물들을 지나치면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기와가마터가 나온다. 진관동에서 발굴된 것을 박물관으로 이전해 복원한 결과물이다. 지금은 뉴타운으로 깔끔한 모습만 보이지만 그 이전에도 은평구의 역사가 착실히 쌓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표다.

• 

  벽면을 이용한 체험활동이 돋보이는 한옥박물관의 은평역사실. 

1층으로 들어가면 은평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전시한 은평역사실이 보인다. 유리바닥 위에서 내려다보는 은평의 유적들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신기한 매개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바닥에는 유물 발굴 현장을 재현해놓고 벽면에는 각종 유물에 대한 동영상 설명을 쏘아준다. 은평구 지역이 고대국가 시기부터 중국으로 나가는 주요 거점이자 개성, 평양과 통하는 교통의 길목이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말쑥한 시가지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한옥. 만져보고 쌓아보고

• 

  한옥에 쓰이는 재료의 장점과 건축 과정을 모형으로 제시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한옥으로 시작해 한옥으로 마무리되는 공간이다. 시대별, 환경별 특징에 따라 달라지는 한옥의 차이점을 설명한 ‘한옥과 자연’ 전시 코너를 지나면 ‘한옥과 과학’ 코너로 이어진다. 순 자연재료로만 만들었던 한옥의 장점, 한옥을 건축하는데 어떤 과정이 필요했는지 등을 설명한 사진을 보다 보면 왜 한옥을 짓고 사는데 품이 많이 드는지 이해하게 된다. 못을 쓰지 않고 기둥을 어떻게 세우는지, 지붕은 어떻게 올리는지 직접 끼워맞춰볼 수 있는 한옥 모형체험도 있다.
 
전통적인 한옥이 어떻게 가구로 채워졌는지 볼 수 있는 전시도 진행중이다. 서울의 대표 한옥인 민형기 가옥의 사랑채를 그대로 본따 전시용 집을 만들었다. 그 안에는 강릉 선교장에서 사용하던 전통 가구를 배치했다. 작년 10월부터 1년 3개월동안 무상으로 빌려와 전시한다니 선교장에 가지 않고도 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것도 10개월 가량 남은 것이다.
 
한옥전시실을 나오면 바로 아담한 규모의 기획전시실이 나온다. 현재 진행중인 기획전시는 <광복 70년! 미래 천년! 진관사, 강릉 선교장의 독립운동 태극기>란 제목이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두 개의 태극기를 중심으로 그 당시 독립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당시 급박하게 진행되었던 독립운동의 흔적을 쉽게 보기 힘든 자료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로 4월 30일까지 진행된다. 

•  

  활발한 교육활동으로 지역사회에 자리매김한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보다 심층적으로 박물관을 이해하고 싶다면 매월 진행되는 체험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엄마와 함께 유아도 들을 수 있는 전통음식 만들기부터 성인들을 위한 인문학 교실, 전통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소목 실습까지, 역사와 전통을 폭넓게 망라하는 교육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아직 개관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문화관광부에서 진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 운영기관으로 선정되어 은평구 내 인문학 교육에도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