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된 4.19혁명이 일어난 지 57주년이 되는 날이다. 사방이 화사한 봄꽃으로 만연할 무렵,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라의 무력 앞에서 쓰러져 갈 수밖에 없었던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을 생각한다. 4.19혁명은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국민들이 정권에 항거한 혁명으로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우리 민족이 높이 평가받는 계기가 된 혁명이다.
4.19혁명의 발단은 1960년 3월 15일에 있었던 3.15 부정선거였다. 당시 장기집권을 꿈꾸던 자유당은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사상 유례 없는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선거를 실시한다. 2월 28일 대구에서 처음 시작된 시위는 3월 15일에 이르러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로 이어졌다. 이때 시위의 중심지는 마산이었다. 이후 4월 11일, 마산 시위 때 행방불명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바다에서 떠올랐다. 오른쪽 눈에는 최루탄이 박힌 채였다.
이 처참한 모습은 당시 신문에 그대로 보도되었고, 이에 격분한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4월 19일 오전 9시, 경무대와 중앙청 앞에 수많은 군중이 집결했다. 그중에는 어린 학생들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은 이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할 뿐이었다. 이 같은 대처는 국민들을 더욱 격노케 했다. 정부의 계엄령 선포는 분노한 국민들 앞에선 무의미했다. 그렇게 4.19혁명이 있은 지 엿새 후 대학교수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를 선언한다.
나라의 운명을 뒤바꾼 역사적인 일들은 이 밖에도 여럿 있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질곡의 역사를 겪으며 독립된 국가가 되었고,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선열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일궈낸 땅에서 살아가는 요즘 우리들은 어떠한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지니고 있었던 자주독립국가에 대한 열망,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물론, 그에 대한 기억조차 점차 흐릿해져 가고 있는 듯해 아쉽다.
늘 상기하며 지내기 어렵다면, 그저 1년 중 며칠, 혹은 단 하루만이라도 숭고한 가치를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선열들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길 바란다. 특별한 날을 맞아, 그들의 뜻을 되새길 수 있는 흔적을 쫓아 본다면 더욱 좋겠다.
단순히 놀고 즐길 수 있는 여행도 좋지만,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는 우리나라가 거쳐 온 역사를 되새기며 역사를 찾아 여행을 떠나본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박옥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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