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 1948년, 제주섬 사람들 사이로 흉흉한 소문이 돈다. 산속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어디서부터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마을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제주의 4월은 말 그대로 ‘유채꽃’의 축제다. 가는 길 마다 놓여 진 노란 꽃망울들은 제주를 탐하러 온 여행객들을 반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제주의 아픔이 서려있다. 4·3사건 유적지와 일제 전적지, 6·25 전적지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4·3사건은 독일의 홀로코스트만큼이나 잔인했던 사건으로 꼽힌다. 정부의 강경진압작전으로 중산간 마을 95퍼센트가 불에 타고, 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탓이다. 제주의 4월 풍경은 산록과 바다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지만, 오늘만큼은 그 아름다움을 잠시 걷어내고 제주의 슬픔과 마주하고자 한다.
일제의 항공기지였던 알뜨르비행장
바다를 따라 펼쳐진 알뜨르비행장의 전경이다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알뜨르비행장의 이름은 ‘아래 너른 벌판’이라는 제주도 말에서 유래됐다. 그 이름을 뽐내듯 비행장 초입에는, 바다를 향해 펼쳐진 들판이 장황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들판 감상도 잠시, 길 너머에 자리한 전투기 격납고가 경관을 막아선다. 푸른 밭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그 콘크리트 구조물은 피할 수 없는 혹은 피해선 안 되는 우리의 역사와 무척 닮아있다.
그 참상은 격납고를 비롯해 들판 곳곳의 크고 작은 콘크리트 구조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구조물들은 알뜨르비행장이 전지 거점 지역으로 발전할 당시 전투사령실·격납고·프로펠러 조정장·발동기 정비장·계기 시험장·연료고·통신실·섯알오름 탄약고 등의 지하 시설이다. 이는 1920년대 중반부터 일제가 모슬포 지역의 주민들을 동원해 10년에 걸쳐 세워졌다고 한다. 이외에도 성산 일출봉, 대정 송악산, 서귀포 삼매봉 등 지금까지 발견된 지하 벙커는 120곳에 달한다고 하니, 과거의 제주가 일제에 의해 악용당했던 그 깊이를 실감케 한다. 그 중에서도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지하 벙커는 견고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뤄져, 지금까지도 그 역사적 가치를 크게 인정받고 있다.
이 곳의 역사는 1926년부터 시작된다. 일본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제주도에 대규모 군사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지금의 ‘알뜨르비행장’이 완공됐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난징을 폭격한 다수의 전투기들이 이 비행장에서 출격했다고 한다. 이 비행장의 본격적인 발전은 태평양전쟁 말기부터다. 1945년 일본군은 미 연합군의 본토 상륙을 막기 위해 ‘결호 작전’에 돌입한다. 이 중 ‘결 7호’작전은 일본 영토를 중심으로 한 다른 작전과 달리 제주도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이처럼 제주도 요새화의 중심이 됐던 ‘알뜨르비행장’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또 하나의 기억, 제주 4·3사건
오랜 세월 해풍을 맞은 알뜨르비행장의 나무들이 육지를 향하여 기울어 있다.
알뜨르비행장에서 남쪽을 향해 걷다보면, 우리는 또 하나의 아픈 기억과 마주한다. 바로 ‘섯알오름 학살터’다. 이곳은 원래 1944년 말 알뜨르 지역을 군사지로 형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폭탄 창고였다. 오름의 정상부에 위치한 두 개의 진지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제주도에 주둔해있던 연합군에 의해 폭파됐지만, 1950년 8월 또 다른 상처가 이 구덩이를 삼키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정부는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한다. 보도연맹원은 좌익전향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의 일원으로, 좌익세력에 대한 통제와 회유를 목적으로 활동했다. 제주지구 계엄당국 또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검속을 실시했는데, 이때 모슬포 경찰서 관내 검속된 주민이 374명이었다. 1950년 8월 20일 새벽 4시경 검속된 주민 중 149명이 계엄군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다. 이날 새벽 2시, 이미 63명의 주민이 학살된 상태였다. 그날의 기억은 섯알오름 남쪽 기슭에 남아있는 구덩이가 증명하고 있다.
역사적 참상을 추념하기 위해 제주시는 봉개동에 ‘제주4·3평화공원’을 세웠다. 2008년 조성된 이 공원은 추모탑과 추모비 등을 통해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일제에 의해, 또 우리에 의해 아픔을 감내해야했던 제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아름다움을 선사했던 제주에 ‘고마움’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제주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것도 좋지만 이번 4월 만큼은 제주의 ‘아픔’을 위로해보면 어떨까요?
글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6년 04월 03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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