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민속마을 옹기가 옹기종기
순창의 옛 지명은 옥천이다. 옥(玉)처럼 맑은 물(川)이 흐르는 고장. 물 맑고, 공기 깨끗해 ‘장맛 나는’ 고장. 덕분에 오늘날 많은 이들이 순창을 고추장으로 기억한다. 모 대기업이 이곳에 고추장 공장을 차린 것도 그와 같은 인식에 한몫 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피순대 유명한 순창시장, 폭포가 아름다운 강천산, 자전거도로로 만든 향가터널 등은 모두 순창의 명물이다. 자고로 좋은 것은 나눠야 제 맛. 순창의 숨은 명소를 트래블피플과 공유하기 위해, <트래블투데이>가 순창을 다녀왔다. 여기자의 ‘감성 충만’ 2박3일 순창 여행기, 그 현장을 전한다.
<퀴즈로 알아보는 순창>
p.m. 12:00 두근두근 순창 여행, 시작!
순창 게스트하우스 '금산여관' 마당에 예쁜 꽃이 수줍게 피어있다.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했다. 서울에서 순창까지는 차로 3시간 30분 남짓 거리. 차가 순창 톨게이트에 진입하자 여행자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마음의 창문이 활짝 열린다. 창문 너머 불어오는 순창의 순한 공기. 순창 여행의 시작이다. 순창 여행의 첫 셔터를 순창읍내의 게스트하우스인 금산여관에서 터뜨린다. 카메라야 잘 부탁해. 카메라를 들고 본격 순창 탐방에 나선다.
p.m. 1:00 서울에 대오서점이 있다면, 순창에는 금산여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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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게스트하우스라고 했다. 그런데 이름은 여관이라고. 예약은 했지만, 설렘 반 걱정 반이다. 아침에 서울을 출발해 순창에 도착하니 낮 12시. 여관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저희 지금 순창군립도서관인데, 어떻게 가면 돼요?”
주인이 마중을 나왔다. 들어가니 옛날식 브라운관 TV와 눈에 확 띄는 라임색 창틀이 눈에 들어온다. 옛 것과 요즘 것의 조화다. 요즘 핫 플레이스인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는 ‘대오서점’이 인기인데, 마치 대오서점을 보는 것 같다. 오래된 집의 빈티지한 느낌. 낡았지만 마음을 끄는 소품들. 짐을 내려놓고 셔터부터 눌러댄다. 이곳이 바로 금산여관이다.
p.m. 2:00 구미마을 남원 양씨 종택과 거북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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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의 꼬리(사진 왼쪽)는 구미마을을 향한다.2
거북이 벽화가 귀여운 구미마을.금산여관 구경도 잠시, 갈 길이 바쁘다. 못다 한 구경은 저녁으로 미루고, 첫 목적지로 떠난다. 거북바위와 남원양씨 종택이 있는 구미마을이다.
“이것이 거북바위인데요, 꼬리가 구미마을로 향하고 있어 복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동행한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구미마을이란 명칭은 거북이 꼬리란 뜻이다. 거북바위 꼬리가 구미마을로 향한 덕분에 이 마을은 다복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를 샘낸 인근 취암사에선 거북바위의 앞뒤 방향을 바꿔놓았다. 구미마을 주민들이 이를 원상 복구하자, 취암사 스님들이 거북바위의 머리 부분을 칼로 베어버렸다. 이후 취암사에 큰 불이 나 타버렸다. 지금도 거북바위는 머리가 없는 채로 그 자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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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간 누군가가 남원 양씨 종가에 흔적을 남겼다.2
고려시대 홍패(사본)를 만날 수 있는 남원 양씨 종가.구미마을의 또 다른 자랑은 남원양씨 종가이다. 630 여 년 전 개성에 살던 이씨 부인이 어느 날 남편과 시아버지를 잇달아 여의었다. 주변에서는 재가(再嫁)를 권했지만 이씨 부인은 단호한 마음을 먹고, 남편 양수생과 시아버지 양이시의 과거 합격증서(홍패)를 들고 고향 남원(지금의 순창)으로 내려왔다. 남원 양씨 종가의 역사가 시작된 배경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고려 시대 홍패, 백패가 총 3점 남아있는데 그 중 2점이 이곳에 있었다. 현재는 전주박물관에 원본이 보관돼 있다.
“그런데 이 꽃은 뭐예요?”
구미마을 입구에는 열부이씨정려각(열녀비)와 벽화가 조성돼 있다.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발치에 웬 꽃이 보인다. 보라색 야생화다. 해설사가 꽃 이름을 알려준다. 큰개불알꽃이란다. 민망한 이름인데, 다행히 ‘봄까치꽃’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봄까치꽃, 하고 속으로 되뇌어 본다. 봄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p.m. 3:00 장군목? 장구목? 섬진강 요강바위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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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상류의 기암바위 절경, 바로 장군목이다.2
요강바위에 누가 동전을 던졌을까?“장군 두 명이 좌대하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장군목’, 가운데가 장구목처럼 좁아진다 해서 ‘장구목’이라고도 불러요.”
구미마을 구경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섬진강 상류의 장군목. 기암괴석의 절경이 유명하다 해 기대가 큰 곳이다. 돌을 밟자 물고기 떼가 약빠르게 흩어진다. 요강바위는 장군목 중간 쯤 있다. 요강바위란 요강처럼 패였다 해서 요강바위다. 안의 깊이는 2m가 넘는다고 한다.
“이 바위가 한때는 도난당했다니까요. 다행히 다시 되찾았답니다.”
해설사의 설명이다. 요강바위 안에는 동전들이 떨어져 있다. 앞서 다녀간 이의 소망을 담은 동전. 그들은 이곳에서 무슨 소원들을 빌었을까. 멀리 눈을 들어 섬진강을 바라본다. 현수교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 섬진강 물살은 드세지 않고 푸근하다. 마치 우리네 옛 할머니들의 젖가슴같다.
p.m. 4:00 회문산 만일사에서 고추장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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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시원지전시관에서 바라본 만일사.2
만일사 장독대에도 장이 익는다.옛날 우리 조상들은 산을 어머니 산과 아버지 산으로 구분했다. 그 중 호남의 어머니 산은 모악산, 아버지 산은 회문산이다. 그 회문산이 바로 순창에 있다.
“옛날 빨치산들의 은거지이기도 했고요, 그보다 더 전에 구한말에는 최익현, 임병찬, 양춘영 의병대장이 이 일대에서 항일 운동 하고 그랬지요.”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회문산이 보통 산은 아니다. 그 옛날 사람들이 숨어들었다는 건 그만큼 산세가 험하고 속속들이 깊다는 뜻. 산이 높기도 높지만(837m), 산의 골도 깊다. 이어지는 해설은 다음과 같다.
“‘’호남 정신 반재 순창, 순창 정신 반재 회문‘이라는 말이 있지요. 조선시대 홍성문 대사가 지은 ’회문산가‘ 중 한 구절인데, 호남 인재의 반은 순창에 있고, 순창 인재의 반은 회문에 있다는 뜻입니다.”
순창에는 명당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회문산 일대. 이곳을 가리켜 ‘오선위기(五仙圍基)’라고 하는데, 풀이하면 ‘다섯 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상’이란 뜻이다. 때문에 국내 수많은 풍수지리가들이 이곳을 답사한다.
-<회문산가>, 홍문대사-
일반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곳은 바로 회문산 만일사다. 만일사는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일화가 얽힌 곳이자, 고추장 시원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 절의 이름은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위해 만 일 동안 기도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고추장 시원지가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이성계가 고려의 장군이던 시절, 무학대사는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매일 틈틈이 기도한 시간을 다 합치면 ‘1만 일’, 즉 약 27년에 이른다는 것이다. 하루는 이성계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무학대사를 격려하기 위해 순창을 방문했다. 가던 중 어느 농가에 들러 점심을 먹게 됐다. 두메산골에 달리 반찬은 없고, 농부가 양념장 같은 것을 내와 밥에 비벼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더란다. 이것이 훗날 ‘고추장’으로 불리게 된 음식이다. 나중에 왕이 된 이성계는 순창의 장맛을 잊지 못하고, 수라상에 고추장을 반드시 올리게 했는데, 이것이 순창 고추장이 왕실에 진상되게 된 계기이다. 조선 왕 중에서는 이성계, 그리고 영조, 정조가 특히 고추장을 매우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내력을 새긴 기념 비석이 현재 만일사의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또 만일사에는 고추장시원지전시관도 있다. 외양은 영락없는 사찰 건물이지만, 문을 열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안내방송도 나온다. 고추장 시원지의 역사와 효능을 알 수 있도록 조성된, 일종의 교육시설이다.
p.m. 8:00 순창 금산여관에서 1박- 주인 홍성순 씨 미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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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여관 주인 홍성순 씨가 책자를 들고 있다.Q. “어떻게 이곳에 이런 여관을 만들게 되었나요?”
A. “원래 여기가 버려진 여관이었어요. 12년 동안. 저는 원래 백화점에서 일하다 고향 순창으로 내려왔습니다. 처음에 이 집을 보고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 생각이 나는 거예요. 어머니가 꽃을 참 좋아하셨는데, 자목련 핀 이 집 마당이 딱 생각이 나. 그래서 남편에게 ‘여보, 나 그 집 할래.’ 이래서 5개월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공들여서 이 곳을 만들었습니다.”
홍 씨는 그동안 버려진 집이 얼마나 짠했겠느냐고 묻는다. 집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는 밤이다. 순창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저문다.
a.m. 9:30 귀래정, 일편단심 단종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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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래정 올라가는 골목은 구불구불하다.2
귀래정은 남향이 아니라 동향으로 지었다.“이곳이 설씨부인 신경준 선생 유지와 귀래정입니다.”
이튿날 아침, 둘째날의 여정이 시작됐다. 첫 목적지는 귀래정 일원. 귀래정은 조선 초 문신이자 신숙주의 동생인 신말주 선생이 단종의 폐위를 안타까워하며 귀향해 지낸 정자이다. 귀래정은 신말주 선생의 호이기도 하다. 귀래정에 관한 시 구절은 오늘날까지 남아 후손들에게 전한다.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것은 무슨 일인가?
정자는 중앙에 자리잡고 샘과 돌은 절경이기 때문이네.
강물은 달리고 들은 멀리 퍼졌으며
산은 작은 정자를 안고 높았네.
-<귀래정기>-
이 시구에 등장하는 ‘강물’은 오늘날 순창읍내를 흐르는 경천을 뜻한다. 도로를 내기 위해 물길을 바꾸는 바람에 지금은 정자 바로 아래로 흐르지 않지만, 그 옛날 조선시대 귀래정에서는 맑은 경천을 내려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보통 정자는 남향으로 짓는데, 귀래정은 동향으로 지었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해설사의 설명이 이내 이해가 된다. 강원도 영월로 귀양 간 단종을 그리는 마음으로 그랬을 터다. 여인이 임을 그리워하듯, 폐위된 임금을 걱정하는 신하의 마음은 얼마나 애달팠을까. 신말주의 지조에 이내 마음은 숙연해진다.
a.m. 10:30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장이 아닙니다, 순창시장(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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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시장의 피순대가 최근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겨울 별미에 선정되기도 한 피순대. 순창시장의 장날은 매월 끝자리가 1, 6으로 끝나는 날이다. 마침 방문한 날이 장날이기에, 순창시장의 ‘하이라이트’인 피순대국밥은 잠시 뒤로 미루고 장 구경을 시작한다.
“서울에서 취재하러 왔어요.”
“취재? 아이구, 뭔 방송을 한당가.”
“방송은 아니고 신문이에요.”
시장은 제법 현대화가 진행돼 있었다. 비 가림 아케이드가 군데군데 설치돼 있고, 간판도 꽤 현대적이다. 하지만 좌판에서 마주한 얼굴은 우리네 옛 어머니, 할머니들의 얼굴 그대로다.
“이건 뭐에요? 얼마씩 해요?”
속사포 질문에 한바탕 ‘해설’이 시작된다. 미나리, 쑥, 콩, 전부 직접 기르거나 채취한 것이라고. 고무대야나 비닐봉지에 가득 든 채소가 보기에도 푸르다. 그 중에는 뚱딴지라고 불리는 돼지감자도 있다. 한 줌 쥐어 냄새를 맡아보니 구수하다. 이름만큼이나 정겹다. 이외에도 식혜를 만들어 먹을 때 쓰는 엿기름(현지어로 ‘엿질금)’, 말린 호박 등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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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가면 들기름집이 있는데, 가볼래요?”
동행한 문화해설사가 시장 한 구석으로 안내한다. 이름은 ‘고속기름집’.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주인이 들깨를 기계에 붓는다. 그러자 기계에서 모락모락 허연 김이 피어오르고, 고소한 들깨 냄새가 진동한다. 잘게 갈린 들깨가 고무 대야에 우수수, 떨어진다. 그것을 모아 착즙기에 넣자 진하고 뽀얀 들기름이 쫄쫄 흘러나온다. 마치 커피머신으로 아메리카노를 내리는 것 같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에 취하는 순간이다.
구경을 마치고 국밥을 먹을 차례다. 순창시장에는 현재 피순대를 판매하는 순대가게 6~7곳이 있다. 각각 순대국밥, 순대전골 등을 판매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인조피와 당면을 쓰지 않는다는 것.
“가게 이름이 왜 봉깨에요?”
식사를 위해 들어선 곳은 봉깨순대. 봉깨는 ‘와 봉깨(보니까) 맛있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 한다. 가게 이름도 향토적이다. 미소를 지으며 국밥을 먹기 시작한다. 구수한 피순대의 식감이 입 안 가득 감긴다. 서울에 싸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p.m. 2:00 한국인의 장맛, 고추장민속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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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민속마을에서는 메주를 흔히 볼 수 있다.2
장류박물관의 명물, '고추' 영상관.순창시장 구경 후 강천산에 들렀다가 장류박물관으로 향한다. 장류박물관은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 일원에 있다. 장류박물관은 한국 고추장, 된장의 역사와 효능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만큼,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박물관 로비에는 궁중 의상을 입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어린이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내부에는 ‘고추’ 모양의 체험시설도 있다. 그 안에 들어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 하다.
장류박물관 뒤편은 옹기체험관이다. 해마다 열리는 순창장류축제 시기를 비롯, 주말이면 이곳은 옹기 체험을 하려는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이 찾는다고. 장의 고장에서 살펴보는 이곳의 옹기들은 왠지 특별하다. 체험관 앞마당의 개와 인사를 나누고, 건너편 민속마을로 가본다.
“이곳은 발효산업진흥재단이란 곳인데요, 여기서 고추장을 연구하지요.”
현지인의 설명에 따라 들어간 곳은 발효산업진흥재단. 로비에 시판용 고추장이 한 가득이다. 종류도 다양한데, 시음회를 마치고 갓 출시됐거나 출시를 앞둔 제품이란다. 토마토고추장, 염도를 낮춘 저염 고추장은 모두 이곳 연구원들의 노력 끝에 나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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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을 나와 순창의 고추장 기능 장인 1호인 ‘문정희 할머니 고추장’ 가옥으로 간다. 장독대 뚜껑 위로 금빛 햇살이 부서진다. 그리고 운치 있는 소나무와 기와지붕. 취재 협조를 구하고 들어가자 문정희 할머니의 ‘손자’ 분이 친절히 안내한다. 매실 장아찌, 참외 장아찌, 굴비 장아찌 등을 시식할 수 있다. 시식 후 민속마을 한 바퀴를 돈다. 멀리 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간다. 해질녘 고추장민속마을의 풍경이 더없이 평온하다. 그렇게 둘째날의 여정이 끝나간다.
a.m. 10:00 봄날의 자전거를 좋아하세요? 라이딩 본능, 향가유원지~향가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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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종주자전거길 따라 향가유원지 갈까?2
자전거도 타고, 스탬프도 찍고!“저 길이 원래는 없었다구. 그런데 자전거도로로 만든 거야.”
현지인의 안내로 시작한 셋째 날 아침의 여정. 시작은 향가유원지다. 안내를 받은 곳은 향가유원지 일원의 향가터널이다. 자전거와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곳이다. 차는 진입할 수 없다.
“그럼 기둥까지만 일제가 만든 거에요?”
“그렇지. 만들다가 중간에 해방이 돼 버린 거야.”
지금은 자전거길이 됐지만, 원래 이곳은 일본이 전라도 일대의 양곡과 특산물, 옥 등을 반출하기 위해 만들다 만 철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철길 조성 예정지였다. 철길을 닦던 중 해방이 됐고, 그 후 남아있던 길을 훗날 군청에서 자전거길로 만든 것이다. 만약 해방 전 철길이 완성됐다면, 얼마나 많은 양민들의 원망이 이 길로 향했을까?
“이건 스카이워크 아닌가요?”
자전거도로를 따라 강 가운데로 가자 스카이워크가 있다. 다리 양 옆에 조성돼 있다. 스카이워크란 투명한 재질로 돼 있어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조망대다. 요즘 여러 지자체에서 조성하고 있는데, 순창에도 있는 것. 섬진강 푸른 물결이 스카이워크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향가터널에 귀를 기울이면 바람이 말 거는 소리가 들린다.
섬진강 위로 쭉 뻗은 향가유원지 자전거도로를 따라 봄날을 달리자.
섬진강자전거길 인증 스탬프 부스를 지나면 향가터널과 이어진다. 역시 일제가 만든 향가터널은, 자전거 라이더 뿐 아니라 여름에는 지역민들의 피서 장소로 인기라고 한다. 저마다 돗자리를 갖고 와 터널 안에서 더위를 피한다고.
“왜 이렇게 추워요? 터널 안에서 소리도 나요.”
고요하기만 한 터널 안에 들어가자 우우웅, 소리가 들린다. 마치 터널이 말을 거는 것 같다.
“터널이니까 춥지. 터널이라 소리가 나는 거야.”
현지인이 서울 ‘촌것’의 무지함을 일깨워준다.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인다.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무서운 기분이 들어 밖으로 나간다. 첫날 문화해설사님이 이름을 알려준 야생화 봄까치꽃이 수줍은 듯 피어 있다. 양지 바른 산길에 피어난 봄까치꽃. 꽃에게 말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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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11:00 순창 여행의 마무리를 순창객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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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느티나무가 순창객사의 벗이 돼주고 있다.2
옛날 외국 사신과 관리들이 묵곤 했던 순창객사.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여행에서도 통하는 걸까. 향가터널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니 불현듯 순창객사가 생각난다. 순창군청 옆 순창초등학교 안에 있는 순창객사는 조선 시대 사신과 관리가 묵어가던 곳이다. 객사 옆에는 수령 수백 년의 느티나무도 함께 있다. 현재 순창에는 오랜 느티나무 네 그루가 남아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의 느티나무다. 원래 순창에는 느티나무가 많았지만, 일제가 다 베어갔다고. 못 생겨서 값어치가 떨어지는 느티나무 네 그루만 남겨놓고 다 베어 팔았는데, 못 생겨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니 왠지 아이러니다. 현재 남은 순창객사는 원형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니고, 정당과 동대청만 남아 있다. 건립연대 1759년으로 추정된다. 구한말에는 최익현 선생의 항일 의병본부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 순창 항일운동의 자부심이 서린 곳이다.
순창여행의 마지막 사진, 순창군청 앞 보도블럭.
정들자 이별이란 말은 이럴 때 쓰나보다. 2박 3일간의 순창 여행이 눈깜짝할 새 끝나버렸다. 봄이 올 듯 말 듯, 겨울이 갈 듯 말 듯 한 3월의 순창. 공기며 물이며 사람이며, 마주치는 면면마다 순한 곳. 장독대 위로 부서진 햇살, 섬진강 수면 위 너울처럼 얹힌 노을이 마음 깊이 반짝인다. 그 모든 추억을 안고 이제는 마무리 할 시간. 2박 3일간의 순창여행을 이제 마친다. 다음을 기약하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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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7년 11월 21 일자
해당 콘텐츠에 대한 기여도 기사+사진 기사 사진 오류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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