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음식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이면 5월에나 나오던 딸기가 비닐하우스 재배로 2월부터 출하되는 것이 그 예다. 늦봄에나 웬만큼 자라던 산나물도 요새는 재배를 통해 원한다면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이렇게 과학의 발전은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해주지만 그 계절에만 느낄 수 있었던 음식에 대한 감흥을 느끼기는 어렵게 한다. 오늘의 <트래블투데이>는 봄철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제철 미각을 소개한다. 사시사철 나오는 가공식품 대신, 오늘은 바다의 선물로 입맛을 꾸려보자. 짭짤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맡으면 잊고 있던 봄 맛이 혀에 배지근하게 배어들 것이다.
서해안- 무장공자의 착 감겨드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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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서해안의 제철 수산물로 암꽃게와 주꾸미를 들 수 있다. 꽃게는 예전부터 무장공자라 불리며 속도 없고 겁도 많다는 놀림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봄철에 알이 꽉 들어찬 꽃게를 맛보면 이런 농담을 하기 쉽지 않다. 속에 꽉꽉 들어찬 알과 내장이 달콤하고도 구수한 맛을 내며 꽃게의 맛을 끌어올려주는데 어떻게 속도 없다는 말을 할까. 그래도 겁이 많은 것은 인정하고 가야겠다. 갯벌에서 꽃게잡이를 나가면 알 것이다. 꽃게가 마치 얼음땡에 걸린 것처럼 멈춰 있다가 쏜살같이 도망가 버린다는 것을. 그러나 안타깝게도 갯벌에 파진 구멍으로 도망쳤다가도 다시 그 구멍으로 빼꼼히 나오니 결국에는 이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게 냉큼 잡혀버린다. 강화도, 안면도와 같이 수도권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살아있는 꽃게를 살 수 있으니 봄철 주말 당일치기 여행으로 딱 좋겠다. 먹고 나서 손에 밴 게 냄새와 쌓아올린 게딱지를 보면 ‘소 먹은 흔적은 숨겨도 게 먹은 흔적은 못 숨긴다.’ 라는 말이 절로 생각날 것이다.
주꾸미도 사시사철 먹을 수 있지만 일명 ‘주꾸미 밥알’, 난소에 알이 가득한 주꾸미를 먹으려면 봄에 미리 작정을 해야 한다. 하얗고 탱글탱글한 것이 눈으로 보는 맛도 좋지만 잘근잘근 씹을 때의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 한번 먹은 사람은 잊기가 힘들 법 하다. 아마 주꾸미 밥알이라는 관용어가 그대로 자리 잡은 것도 이 맛을 좋아하고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4월까지 알배기 주꾸미는 계속 잡힐 예정이니 산지를 찾아 맛보는 것도 추천할 만 하다. 다만 직산지가 아니라 근처 시장이나 가게에서 살 때는 국산으로 둔갑한 중국산을 먹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겠다. 머리 표면이 매끄럽고 상처가 적은 것, 색이 어둡고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것이 포인트다.
남해안- 고운 진흙뻘이 키워준 쫄깃한 조개맛
부들부들한 관자를 얇게 잘라 버터에 살짝 구워먹는 것. 흔히들 말하는 키조개 관자 요리의 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흥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장흥 삼합’이 독보적이다. 이른 봄에 나온 쫄깃쫄깃한 표고와 산란기 직전에 살이 뿌듯하게 오른 키조개 관자를 쇠고기 위에 올려 구워먹는 요리다. 불이 너무 뜨거우면 관자가 금방 질겨지니 고기에 붉은 기만 가시면 바로 쌈에 싸먹는 것이 좋단다. 그런데 왜 장흥에서 키조개를 먹어야 할까? 최대산지는 서해안에 넘겨준 지 오래인데. 왜?
조개가 자라나는 뻘이 다르다. 이 득량만의 키조개는 양식도 아니고 자연산도 아니다. 이식이라는 방법을 쓴다. 다른 지역에서 한 살 먹은 키조개를 가지고 와 다이버들이 득량판의 뻘에 하나하나 심어준다. 다른 곳에서는 이식을 해도 키조개가 모두 죽지만 장흥 바다에서 자라는 키조개만큼은 어쩐 일인지 쑥쑥 자란단다. ‘아마 모래 섞인 뻘이 아니라 고운 진흙뻘이라 양분이 많아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만 할 뿐이다. 보통 패주만 구워먹지만 날개살과 내장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부분이라 바다향을 한껏 느낄 수 있고 조림이나 볶음에 넣으면 씹는 맛이 패주와는 또 다르다.
동해안- 미역도 제철이 있다.
미역이 양식이 가능해지면서 미역국은 사시사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양식미역의 하늘하늘하고 부드러운 촉감에 익숙해져 돌미역의 질긴 듯 거친 식감을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래도 여전히 첫 아이 낳았을 때의 선물은 꺾지 않은 자연산 돌미역만한 것이 없다. 양질의 자연산 미역은 바닷물이 맑아 햇살이 충분히 비추면서도 조류는 거세 육질이 쫀쫀하게 형성된 것을 상품으로 친다.
울진의 고포마을이 대표적이다. 강원도인지 경상북도인지 알쏭달쏭하지만 도로 하나 사이로 삼척이 아니라 울진으로 분류되었다. 고포마을에서 자연산 미역이 본격적으로 출하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 때, 4월이다. 이 시기에는 아침 일곱 시부터 해녀가 미역을 채취하러 미역짬으로 나가고 아이들과 노인들은 바람에 떠밀려 온 돌미역을 풍락초라고 부르며 열심히 건진다. 미역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랐던 뭍사람들에게는 낯선 볼거리다. 울진하면 대게만 떠올렸던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하루 10시간, 해녀가 걷어온 미역은 미역발에 차곡차곡 앉혀 높새바람에 말린다. 태백산맥에서 비구름은 다 걷어내고 난 건조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주니 미역 말리기에 최적이다. 이렇게 말린 미역들은 울진 특산품으로 포장되어 인기리에 팔려나간다. 인근의 5일장인 흥부장, 울진장, 죽변장 등에서도 이들 미역을 구할 수 있으니 생기 넘치는 장터 구경과 봄향기 전해주는 특산품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겠다.
계절 별미가 별미라고 불리는 데에는 제철 산물이 가지고 있는 영양소와 계절을 지나면 다시 먹기 어려운 점 때문이지요. 계절을 느끼는 법, 그리 멀지 않답니다.
계절 별미가 별미라고 불리는 데에는 제철 산물이 가지고 있는 영양소와 계절을 지나면 다시 먹기 어려운 점 때문이지요. 계절을 느끼는 법, 그리 멀지 않답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4년 03월 08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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