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금빛열차 안의 '미니 서해금빛열차'
“KTX 타세요?” 오전 7시. 용산역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가 물었다. 서해금빛열차를 탄다고 하자, 대번에 알은 척을 했다. 가격은 얼마냐, 좋냐 등 질문이 쏟아졌다. 지난 달 29일 개통해 2월 5일부터 운행하는 코레일 서해금빛열차(G-Train)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정식 운행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국민 시승단 행사가 열렸다. <트래블투데이>기자가 국민 시승단과 함께 서해금빛열차를 직접 타봤다.
서해금빛열차 시티투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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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금빛열차가 2월 본격 운행에 들어갔다.2
서해금빛열차는 세계 최초의 온돌마루 객실을 갖췄다.서해금빛열차는 서울 용산역을 출발해 아산역, 홍성역 등 총 9개 역을 경유, 최종 목적지인 익산역에 닿는다. 이 중 7개 지역과 각각 연계한 ‘서해금빛열차-시티투어’ 패키지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연계 관광을 원치 않는다면, 원하는 목적지까지 서해금빛열차만 별도로 이용할 수 있다. 열차 특징은 온돌마루 객실과 족욕 시설이다. 특히 한옥식 온돌마루 객실은 세계 최초다. 총 5호차인 객실은 3개 칸이 일반 객실, 나머지 칸이 각각 이벤트 공간(족욕 시설 포함), 온돌마루실이다.
8시 27분, 열차 출발
-족욕 시설, ‘넌 감동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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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이용료를 내고 족욕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2
'서해' 금빛열차 답게 충청도 사투리 안내판이 재치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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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단 참가자와 승무원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2
개그맨의 입담으로 객차 안은 웃음바다가 됐다.차는 8시 30분 경 용산역을 출발했다. 영등포역을 지날 때 쯤, 족욕 시설이 있는 3호차로 가봤다. 일반 객실이 지나치게 조용하다 싶었는데,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3호차는 족욕 시설, 객차 매점과 간이 카페가 조성된 곳. 화사한 수트의 승무원 세 명이 무언가 분주하게 준비한다 싶더니, 이내 노래가 나왔다. 빠른 비트의 아이돌 가요에 맞춰 승무원들의 ‘댄스 타임’이 시작되자, 족욕 시설을 구경하던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흥(興)의 민족 한국인답게, 일부 승객이 ‘댄스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여기 저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침부터 고기를 구워 먹는 ‘모닝 삼겹살족(族)’은 들어봤어도, ‘모닝 댄스’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과연 한국인의 ‘흥’ 본능은 대단하다.
이어진 순서는 개그맨 쇼. 아산코미디홀 출신인 개그맨 3명이 ‘은하철도 999’의 승무원 복장 차림으로 등장했다. 등장부터 폭소가 터졌는데, 만담에 가까운 입담으로 객차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 이들의 개그쇼는 열차 내 모니터를 통해 전 객실에 방송됐다.
개그쇼가 끝나자 승무원들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기념촬영을 하고, 엽서를 나눠줬다. 기자에게도 사진 촬영을 요청하기에 흔쾌히 응했다. 제공한 엽서에 사연과 신청곡을 써 내면 틀어준다기에, 두어 줄 끄적여 건네주었다. 분위기가 정돈된 후 여유로운 마음으로 족욕 시설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물을 틀자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졌다. 건식, 습식 모두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용료는 객실 이용료와는 별도. 뜨거운 물에서 피어오른 증기가 창문에 어른거렸다.
10시 40분, “해 뜨는 서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산의 ‘서’가 ‘서녘 서’가 아니라고?
“서산 투어 하시는 고객님들은 손을 들어 주세요.”
두 시간 쯤 달리자, 객차 방송이 나왔다. 장항선을 달리는 서해금빛열차는 서산, 보령, 군산 등의 시티투어와도 연계가 되는데, 기자를 포함해 이날 서산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이 다수 손들었다. 이윽고 정차한 홍성역에서 서산투어 참가자들이 하차했다.
서산 투어 참가자가 홍성역에 하차한 이유는 하나였다. 서산에 기차역이 없기 때문. 홍성역에 내리자 서산시티투어 버스 3대가 일렬로 대기하고 있었다. 각 버스에 서산시 문화해설사가 동행했고, 버스는 이내 서산시 간월암으로 향했다.
“서산의 ‘서’자는 ‘서녘 서(西)’가 아니라 ‘상서로울 서(瑞)’자입니다.”
버스 출발과 동시에 문화해설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서산이 ‘서쪽 산’이 아니라, ‘상서로운 산’이라고? 해설사의 설명은 충격에 가까웠다. 이래서 시티투어를 하는구나 싶었다. 오리지널 서울 출신, 서울 토박이, 서울 물만 줄곧 먹고 자란 기자에게는 신선한 ‘상식’이었다. 알고 보니 서산은 임금이 살던 곳, 따라서 상서로운 산이라는 뜻의 지명이라고. 서산의 슬로건 역시 해 지는 서산이 아니라, ‘해 뜨는 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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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은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다.2
서산투어 참가자들이 간월암에 들어서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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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 어물전 풍경은 아직 겨울이다.2
서산 사투리가 흠뻑 배인 간판이 눈에 띈다.버스는 금세 간월암 입구에 닿았다. 간월암은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데, 마침 물이 다 빠져있었다. 회색 뻘을 눈으로 훑으며 간월암으로 갔다. 사진 찍기에는 썰물 때보다 밀물 때가, 대낮보다는 낙조 질 때가 훨씬 더 좋지만 따져 무엇할까. 작은 암자인 간월암은 서산 스탬프투어 코스에 포함돼 있기도 한데, 들어가니 경쾌하리만큼 빨간 색상의 ‘스탬프 투어-서산 9경’ 간판이 눈에 띄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내릴 때는 자세히 못 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생굴과 어리굴젓 등을 파는 간월도 ‘어물전’이었다. 시티투어 참여자들이 관심을 보이자, 즉석에서 시식판이 벌어졌다. 중년 여성들이 너도나도 이쑤시개를 들이대고 어리굴젓을 입에 넣었다. 아직은(?) 서구식 입맛을 가진 기자는 굴젓보다는 간판이 더 눈에 띄었다. 바로 ‘돌생굴 있씨유 와봐유’ 라는 글씨가 적힌 스티로폼 간판이었다.
서산 구경도 식후경, 굴밥으로 점심 식사
-‘자연산 굴’은 비리지 않다!
간월암 구경을 마치자 점심 시간이었다. 간월도 갯벌과 면한 굴 요리 전문점에서 단체 식사를 시작했다. 주문한 요리는 굴 파전과 영양굴밥.
“어리굴젓 부족하면 더 갖다 드립니다.”
선한 인상의 식당 주인이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굴밥과 굴 숭늉을 떠 줬다. 서산 특산물인 어리굴젓과 기타 반찬들이 딸려 나왔다. 어리굴젓은 다른 젓갈과 달리 싱겁게 얼저린 굴젓이라 하여 ‘어리굴젓’이라고 한다. 싱거운 만큼, 담근 지 2~3주 내에 먹어야 한다고. 서산 어시장 등에서 파는 굴은 자연산 굴로서, 양식 굴과 달리 알이 작고 쫀득한 게 특징이다. 굴 특유의 물컹한 식감과 비린내가 싫은 사람이라면, 서산 굴을 추천한다.
간월도 아낙들의 모습에서 생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
굴밥으로 뱃속을 든든히 하고 나오니, 시야 가득 뻘 풍경이 펼쳐진다. 시멘트의 회색은 차갑고 정나미 떨어지지만, 갯흙의 회색은 질박하고 수더분하게 느껴진다. 마치, 성격 좋은 애인의 품처럼. 마침 굴 캐고 돌아오는 아낙들이 보였다. 얼마나 오래 있다 허리를 폈을까. 반 기역(ㄱ) 자로 구부러진 그네들의 허리에서, 생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1시 20분, 해미읍성 역사 삼매경
-교황 프란치스코, ‘여숫골’ 순교자의 넋을 기리다
사실 ‘해미읍성’ 하면 탱자나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맹모(孟母)가 울고 갈 만큼 열성, 아니 극성이었던 집안 교육열 때문에, 기자의 유년은 ‘피곤’했다. 주말에는 어디든 가서 뭐든 배워야 했고, 해미읍성도 그 중 하나였다. 추운 겨울날 차에서 내린 기자에게, 모친은 ‘이곳은 ’해미읍성이라는 곳인데, 탱자나무가 유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탱자를 먹기까지 했던가, 아니었던가. 성 주변에 가시가 뾰족한 탱자나무를 심어 함부로 못 들어오게 했다는 설명이었는데, 그 기억이 너무나 강렬했다. 조기교육의 폐해(?)라면 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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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은 우리나라 3대 읍성 중 하나다.2
서산 시티투어 문화해설사가 해미읍성 각자석을 설명하고 있다.탱자나무의 기억을 떠올리며 해미읍성에 내리자,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시작됐다. 설명은 뜻밖의 곳에서 시작됐다. 다름 아닌 성벽의 각자석(刻字石). 해설사가 가리킨 곳은 입구 성벽의 ‘공주‘라는 한자였다. 해미읍성을 쌓을 때, 공주 사람들이 와서 쌓았다는 표식이라고 한다.
해미읍성에 들렀다면 기억할 곳이 해미면 여숫골이다. 이곳은 고종 5년(1868)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으로서, 전국 최대의 순교 성지다. ‘여숫골’이라는 지명은, 박해 사건 당시 울면서 끌려 가던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 하고 읊조리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여수머리(예수 마리아)골’이라 불리던 게 차츰 ‘여숫골’이 된 것.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다녀간 곳도 이러한 맥락이다.
2시 10분,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
-마음을 열다, 봄을 열다
개심사의 건물 기둥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써서 웅장하기보다는 편안하다.
“웅장하기보단 소박하고 편안한 절입니다.”
설명을 듣고 도착한 곳은 서산 상왕사 개심사였다. ‘마음이 열리는 절’이라는 뜻의 개심사(開心寺). 개심사 오르는 길 초입에는 말린 고사리 등을 파는 산나물 가게가 있었다. 절 오르는 길, 산길 가장자리에 계곡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녹다 만 얼음이 눈에 띈다. 얼음장 밑으로 계곡 물이 힘 있게 흐르고 있다.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20여 분 등산 끝에 개심사가 보인다. 절 마당에는 외나무다리가 있는 연못이 있다. 계곡 물과 달리, 아직 얼어 있는 연못. 외나무다리에 얼마 쯤 눈길을 주다가, 대웅전으로 올라간다. 개심사 건물의 기둥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쓴 것이 특징. 구부러지고 휜 채 단청이 덧칠해진 기둥이 눈에 띈다. 그 자연스러움에 눈길을 빼앗기다 보니, 언 마음이 개개 풀리는 기분이다. 소박하고 편안한 절이라던 해설사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감태와 굴로 유명한 서산 최대 시장, 동부시장
-어물전 할머니의 “고마워”
“서부시장도 있냐구요? 그건 아닙니다.”
동부시장으로 가는 버스 안, 해설사의 설명이다. 원래는 서부시장도 작은 규모나마 있었는데, 충남 서북부 최대의 수산시장을 포함한 동부시장이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서부시장과 통합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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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동부시장은 감태와 굴, 꽃게가 유명하다.2
동부시장 천장에는 아기자기한 등이 매달려 있다.동부시장에 들어서자 뜻밖의 조형물이 눈에 띈다. 천장 높이 매달린 조형물이 밝게 빛난다. 의외의 도회적 조형물에 마음이 흐물흐물해 진다. 전통시장의 현대화를 피부로 느낀다.
“감태는 기름을 안 칠하고 먹는 게 더 맛있어.”
감태로 유명한 동부시장. 감태 파는 가게에서 기자가 머뭇거리자, 주인 아주머니가 나와 ‘썰’을 푼다. 구운 감태라며 시식도 권한다. 결국 약해지는 기자의 마음, 감태를 사고 말았다. 김과 비슷한 감태는 고급 해조류인데, 과거 조선시대 왕의 진상품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귀하고 맛이 좋다는 증거다.
내친 발걸음이니, 시장을 더 샅샅이 누볐다. 충남 서북부 최대의 수산시장이라는데, 과연 어물전 해산물들의 싱싱함이 육안으로도 느껴진다. 물메기, 꽃게 등이 많고, 굴도 원산지별로 나눠서 판다. 안면도 굴, 중왕리 굴 하는 식이다. 모두 자연산 굴이어서, 알이 작고 쫀쫀하다.
서산 동부시장은 충청 서북부 최대의 수산시장을 포함하는데, 싱싱한 자연산 굴을 살 수 있다.
낮에 먹은 굴밥의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기자. 결국 어물전 거리를 얼쩡거리다, 굴을 사고 말았다. 비닐에 포장된 굴이 제법 무게가 있다. 하지만 무겁다기보단 '득템'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은, 여행 온 자의 여유 때문일까.
“서울까지 가져갈 건데, 안 상할까요?”
돈도 내기 전에 걱정부터 하는 기자에게, 어물전 주인 할머니께서 ‘얼음 싸줄까?’ 하신다. 얼음으로 포장한 굴을 건네주며 ‘고마워’ 하시는 할머니. 외지 사람이 싱싱한 굴을 먹을 수 있게 해 줬으니 고마워 할 건 이 쪽인데, 오히려 고맙다는 그 말이 마음 가운데 철썩 들러붙는다.
시티투어 이용자에게, 동부시장에서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못 된다. 수산시장과 기타 상점을 천천히 둘러보기엔 다소 빠듯한 시간. 동부시장에 가서 꼭 사야 할 것을 세 가지만 고르라면 감태와 굴, 꽃게를 추천한다. 생굴 한 봉지 사서 도시로 돌아가 초장에 찍어 먹는다면, 그 또한 별미일 것이다.
오후 8시, 서해금빛열차와 ‘뜨거운 안녕’
서해금빛열차가 홍성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서산투어는 오후 6시경 끝났다. 아침에 내린 홍성역으로 돌아가, 서해금빛열차에 다시 올랐다. 저 멀리 철길 따라 들어오는 열차의 금빛 ‘머리’. 테스토스테론 넘치는 ‘상남자’의 얼굴처럼 자신만만, 또 야심만만해 보인다. 금빛열차에 올라 아쉬운 마음에 온돌마루실을 다시 둘러보았다. 먼저 탄 탑승객들이 온돌마루 위에서 왁자한 저녁 상을 벌이고 있었다. 마루 아래 벗어놓은 신발만 보아도, 편안함이 전해지는 듯 했다.
온종일 돌아다닌 후의 피로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하루 동안 본 서산의 풍경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다 보니 어느 새 용산역. 손목시계는 오후 8시를 가리킨다. 마지막까지 손 흔들며 인사하는 승무원들의 화사한 미소를 뒤로 하고, 서해금빛열차와 ‘뜨거운 안녕’을 나누었다.
기차 여행, 버스 여행 둘 다 하고 싶다면? 서해금빛열차 타고 서산시티투어 추천! 군산, 보령 등 다른 코스도 있으니 입맛따라 여행 가능!
글 트래블투데이 이나래 취재기자
발행2015년 02월 06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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