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 가옥 입구에 '종로구립미술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인왕산 끝자락. 높은 담장 너머로 붉은 빛의 지붕을 가진 이층집 하나가 보인다. 그냥 보아도 평범한 서민이 지냈을 집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겨울인데도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이 울창해 쉽게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누구의 집일까. 문패를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니, 대문의 왼편에 ‘朴魯壽(박노수)’라는 한자가 쓰여 있다. 오른편으로는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이라는 안내가 보인다. 미술관 건물치고는 보기 드문 모양새다 했더니, 남정 박노수 화백(1927-2013)이 지내던 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것이란다.
친일파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집
'박노수 가옥'은 본래 일제강점기 친일파 윤덕영이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든 집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저택의 면모를 뽐내는 이 으리으리한 집의 원래 주인은 남정 박노수 화백이 아니었다. 순종 황제의 부인인 윤황후의 큰아버지이자 친일파로 잘 알려진 윤덕영이 자신의 딸과 사위를 위해 지은 집이었다. 윤덕영은 황후의 외척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한일한방조약’을 체결하는데 일조하는가 하면, 순종이 일본 왕실에 참배를 하도록 종용하는 등 일제 강점기 때 친일 행각을 벌인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자신 또한 옥인동에 ‘벽수산장’이라는 저택을 짓고 지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았다.
지금의 박노수 가옥은 지금으로부터 약 80여 년 전인 1937년경 지어졌다. 한식과 양식 건축기법이 절충되어 지어진 주택으로, 중국식, 일본식 건축기법도 섞여 있어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깊다. 1층은 온돌방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이고 안쪽에 벽난로만 3개나 설치하는 등 호화스럽게 꾸며놓았다. 남정 박노수 화백이 이 집의 주인이 된 것은 지난 1972년의 일. 이후 약 40여 년 동안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 오랜 세월을 지내온 만큼 증축, 수리를 거쳤으나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지난 1991년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등록되었다.
한국화의 거장, 남정 박노수 화백
남정 박노수 화백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새로운 한국화풍을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정 박노수 화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박노수 화백은 대학에서 정규 미술 교육을 받기 시작한 첫 세대였다. 청주상업학교를 졸업한 화백은 청전 이상범 화백의 제자로서 전통 회화를 그려왔으며, 1946년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한 뒤, 1955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를 겸임하며 후학들을 양성했고, 지난 1995년에는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한국화의 양상을 따르면서도 색채가 대담하고 운필이 간결해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한국화풍을 구축해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샀다. 한편 박 화백이 사회 환원의 뜻을 밝힌 것은 투병 중이던 지난 2011년의 일이다. 화백은 종로구와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설립을 위한 기증 협약’을 맺으며, 자신의 소장품과 작품들을 기증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미술관 설립을 준비 중이던 2013년 2월 타계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금의 박노수 미술관은 같은 해 9월 탄생했다.
하나의 작품 같은 박노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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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 가옥'은 2013년 9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했다.2
'박노수 가옥'의 전망대에서는 박 화백의 집은 물론 서촌의 전경을 볼 수 있다.대문 안쪽으로 발을 한발 들여놓자, 집 안에서 사람이 마중 나온다. 순간 이 집의 주인인가 하는 착각이 들 만큼, 아무리 보아도 겉은 보통 집의 모양이다. 마중 나온 사람은 미술관을 관리하는 종로구청의 직원인 듯하다. 개관 후 1년간 무료입장이었던 미술관은 현재 소정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미술관 실내는 물론 정원을 관람하기 위해서도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표를 발권하는 기계는 집의 입구에 놓여 있는데, 쓰는 법을 잘 모르더라도 당황하지 말 것. 직원이 친절히 안내해 준다.
외관부터 남다르다 했더니 내부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단다. 정말 남의 집이라도 온 듯이 벗은 신발을 가지런히 두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왁스칠을 한 듯 번들거리는 나무 바닥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거덕거린다. 비좁은 통로, 작은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드는 빛, 실내를 감싸는 클래식 음악. 벽면에 걸린 박 화백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작품을 보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오래전 화백이 이 집을 구입할 때에, 어쩌면 처음부터 ‘미술관’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박노수 미술관에는 화백이 기증한 작품 및 고미술품, 고가구 등 모두 1,000여 점의 소장품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안방과 주방, 거실, 화실 겸 서재 등 모두 6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대표 작품들은 벽면에 걸려 있고, 가구와 수집품 등은 그대로 배치되어 있거나 별도의 테이블 위에 전시돼 있다. 낡은 가옥과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인 화백의 작품, 창문 밖 정원의 풍경과 동네의 소리가 모두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된다.
1. 미술이나 건축에 흥미가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특히 좋아할 거예요!
2. 가옥에 들르기 전, 박노수 가옥에 얽힌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설명해 준다면 더욱 의미 깊은 방문이 될 거예요!
3. 박노수 가옥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요. 카메라는 잠시 넣어주세요.
4. 박노수 가옥 내부에서는 큰 소리로 떠들 수 없어요. 리액션이 큰 외국인 친구라면 주의해 주세요.
5. 박노수 가옥의 뒤편에는 가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은밀한 전망대가 있어요. 미술관 내부를 다 둘러보았다면 빼놓지 말고 올라가 보세요!
일제강점기 친일파에 의해 지어진 이 건물은 박노수 화백을 거치면서 새로운 예술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는데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박노수 미술관으로 역사와 예술 산책을 떠나볼까요?
글 트래블투데이 엄은솔 취재기자
발행2015년 02월 04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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