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해, 공 - 국물 요리의 따끈한 공습
거리가 얼어붙고 찬바람이 몰아친다. 미끄러운 길바닥도 길바닥이지만, 뼛속까지 한기가 스미는 것 같은 기분은 몇 해의 겨울을 견디고 난 뒤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침상에도, 점심상에도, 그리고 저녁상에까지 국물 요리가 오르는 것은 따끈따끈한 국물을 양껏 마시는 것이야말로 몸을 녹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트래블투데이]가 당신의 언 몸을 녹여 줄 국물 요리들의 따뜻한 공습을 주도한다.
육(陸), 그 깊고 진한 맛
육(陸), 혹은 육(肉). 우선은 네 발로 디뎌 밟은 듯 깊고 진한 맛을 자랑하는 국물 요리들을 맛보도록 하자. 고기가 들어간 국물 요리는 하나같이 진국이다. 심지어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에도 고기를 더해야 제맛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은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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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진동에는 8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해장국 골목이 있다.2
은평구의 응암동 감잣국거리는 지금 '감자탕'이라 불리는 음식이 태어난 곳이다.3
경기 의정부시에서는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를 만날 수 있다.서울부터 훑어 내려가자면 종로구의 선지해장국과 은평구의 감자탕을 먼저 소개해야 하겠다. 두 음식 모두 전국적으로 많이 먹는 음식인데 왜 하필 종로구와 은평구의 이름을 붙이는가 하니, 종로구에는 청진동 해장국 골목이, 은평구에는 응암동 감잣국거리가 있다. 8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함께 한 음식 거리로 비견되는 청진동 해장국 골목의 명성도 자자한데, 응암동 감잣국거리는 감자탕이 태어난 곳이라 하니, 돼지로 우려낸 진한 국물 맛을 보고 싶다면 응암동을 찾지 않을 수 없겠다. 같은 맥락에서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또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곳. 이 거리에 있는 음식점 중 한 곳에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소시지를 우리 입맛에 맞게 끓여낸 것이 부대찌개가 되었으니, 부대찌개의 고향이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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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염소탕은 추위는 물론, 건강까지 잡을 수 있는 메뉴이다.5
나주 곰탕의 진하디 진한 맛을 무엇에 비견할 수 있으랴.남부 지방으로 내려가 보자면 흑염소탕, 그리고 곰탕을 소개할 수 있겠다. 흑염소탕은 전라도와 경북 지방에서 즐겨 먹는 음식.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된장을 풀어 끓인 물에 염소고기를 삶아내고 여기에 다시 갖은 채소류와 들깨가루 등을 더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영양이 가득한 흑염소탕은 여름철에는 보양식으로 사랑받는 음식. 겨울의 허한 몸과 기운을 북돋워주는 데에도 흑염소탕이 톡톡히 한 몫을 해낼 것이다. 소의 뼈로 끓여낸 육수에 사태와 양지머리 등을 얹어 내어 놓는 곰탕은 마산, 부산 등에서 모두 즐겨 먹는 음식이나 전라남도 나주시의 나주곰탕이 가장 유명하다. 나주시 중앙동에는 곰탕골목이 있으니 이곳을 찾는다면 곰탕 맛의 진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海), 얼큰한 맛에 낭만까지
매서운 바람에 파도 소리가 한층 더 날카롭겠지만, 겨울 바다를 내다보며 맛보는 국물 요리의 얼큰함에 비할 바가 있으랴. 몸이 스르륵 녹아내린 뒤에는 겨울 바다가 주는 낭만에 젖어 들게 될 것이니 일석이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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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찌개의 얼큰한 맛이 사진을 통해서도 전해져 오는 것 같다.2
알이 통통하게 오른 도치의 맛은 탕을 더욱 맛있게 해 준다.해산물로 만든 국물 요리는 대체로 얼큰하다. 겨울이 제철이라 불리는 도루묵찌개 또한 마찬가지. 멸치육수에 갖은 양념을 더한 국물에 알이 꽉 찬 도루묵을 끓여낸 도루묵찌개는 강원도 일대의 별미로 겨울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강원도를 떠나기 전에 도치알탕과 대게찌개를 맛보는 것도 잊지 말자. 그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겨울의 도루묵찌개처럼 도치알탕에서도 신선한 알을 양껏 먹을 수 있다. 대게 또한 늦가을부터 봄까지가 제철이니,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게를 얼큰하게 끓여낸 그 맛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신 김치와 함께 끓여낸 도치알탕의 국물 맛 또한 추위 걱정을 한 수 접어두게 만들고야 말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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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국물을 내는 용도로 사용되지만, 알고 보면 멸치는 회로도, 찌개로도 맛있는 생선이다.4
용현동 물텀벙이 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곳이다.경상남도 지방과 부산 기장군 등에서 유명한 멸치찌개 또한 바다의 얼큰한 국물 맛을 자랑한다. 생멸치를 듬뿍 넣어 우려내는 국물은 끓일수록 점점 더 진해지니, 그 매운맛에 중독되어 매해 멸치찌개 맛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인천과 마산의 아귀요리 또한 유명한데, 아귀를 국물 요리로 즐기고 싶다면 인천으로 가 보는 것이 좋다. 마산의 아귀요리는 아귀를 말려 쪄내는 아귀찜이 주를 이루기 때문. 인천에서는 생아귀를 이용한 아귀탕을 주메뉴로 삼고 있다. 인천에서는 오래전부터 아귀를 ‘물텀벙이’라 불러 왔으니, 인천광역시 남구의 용현동에는 물텀벙이 거리를 찾는다면 아귀탕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공(空), 날개 돋친 그 맛
여름철에 땀을 송골송골 맺히게 했던 그 맛, 겨울이라고 어디 갈 리가 있겠는가. 닭과 오리로 끓여낸 그 맛은 날개 돋친 듯 기분 전환에도 그만이다. 여름에 맛보았던 그 감동, 겨울의 몸보신을 위해 재현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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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알탕은 여행자들을 닭요리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준다.2
영양이 가득 담긴 복계탕은 기운을 한껏 북돋워 줄 것이다.우선 특별한 맛부터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소개할 국물 요리는 닭알탕. 그 이름이 생소하기도 할 텐데, 닭알탕은 미처 계란이 되지 못한 작은 알들을 닭고기와 함께 끓여낸 음식이다. 양은 냄비에 보글보글 끓여낸 닭알탕의 얼큰한 국물은 닭개장, 혹은 내장탕과 비슷한 맛이 난다. 닭알탕의 국물 맛을 즐기고 난 뒤에는 볶음밥을 해 먹을 수 있으니, 이 또한 닭알탕 먹는 재미 중 하나다. 삼계탕에 전복과 복어를 넣고 끓여낸 복계탕 또한 겨울에 즐기기 좋은 음식 중 하나. 삼계탕에 바다의 맛과 영양이 더해졌으니, 몸보신에도 그만인 음식이 바로 복계탕.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국물 아래에는 닭죽이 가라앉아 있으니, 속도 든든하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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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오리탕 골목은 광주를 찾았을 때 들르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4
서촌 삼계탕의 명성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다.광주광역시에서는 오리탕을 맛볼 수 있다. 닭보다 한층 더 진한 맛과 영양을 자랑하는 오리를 뚝배기에 끓여낸 오리탕은 겨울철 보양식으로 사랑받는 국물 요리 중 하나. 광주광역시 북구 유동의 오리탕 골목은 광주 여행의 단골 코스로, 들깨가루를 잔뜩 넣고 끓여낸 칼칼한 오리탕을 맛볼 수 있는 오리탕 전문점들이 모여 있으니, 광주역을 경유하는 여행코스를 잡았다면 오리탕을 맛보는 것을 잊지 말자. 정석대로 삼계탕을 맛보고 싶다면 종로구의 서촌을 찾아가 보자. 복날이면 어김없이 주변 도로를 마비시킬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삼계탕집이 여기에 있다. 삼계탕의 진미 역시 국물.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목구멍으로 넘기는 그 맛, 겨울이 아니면 언제 제대로 맛볼 수 있겠는가.
국물 요리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소개해 드린 것은 빙산의 일각. 소개 못한 국물 요리가 전국에 숨어 있으니, 국물 요리와의 숨바꼭질 한 판을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8년 09월 26 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