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기도주문으로 추정되는 17개의 낙서가 발견돼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장경판전은 국보 52호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국민들은 문화재 훼손 소식에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안타깝게도 지난 2008년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 훼손에 대한 트라우마는 ‘전 국민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해인사는 합천군 내에서 수 년 째 관광객 방문지 1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트래블투데이>는 결코 훼손돼서는 안 될 우리의 세계유산인 해인사 장경판전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2012년 합천군 관광실태조사 결과 보고
합천군 내 부동의 1위 방문지, 해인사
해인사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다. 해인사의 부속 건물 중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건물이 장경판전인데, 이 장경판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지난 1995년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장경판전은 가야산 등 주변 자연환경을 활용해 팔만대장경을 효과적으로 보존하고 있는 점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장경판전이 그 가치를 더욱 크게 인정받게 된 계기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해인사가 그동안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경판전만은 온전히 남아 내부의 팔만대장경을 훼손 없이 보존한 점이다.
물론 대중들에게 더욱 많이 알려진 것은 장경판전보다는 팔만대장경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어찌됐든 해인사는 합천군내 방문지 1위를 차지하고 있음이 명실상부한 사실이다. 이는 ‘2012년 합천군 관광실태조사 결과 보고’에도 드러나 있다.
이처럼 경남도는 물론 군(郡) 전체의 문화관광 차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해인사가 무차별 낙서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실을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군은 물론 국가 차원의 체계적 관리가 더욱 절실한 대목이다.
숨 쉬는 건물,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은 대장경의 효과적 보존을 위해 과학적으로 설계됐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집 한 채를 지을 때도 과학적 원리를 반영했다. 그만큼 지혜가 뛰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장경판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데, 장경판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통풍과 환기 기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해인사는 산에 있는 사찰로서 습도와 온도의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이 때문에 통풍을 더욱 고려해 설계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경판전은 불교 경전을 모신 곳으로서, 기독교로 비유하자면 성서를 모신 곳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해인사 건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곳으로 취급받았는데, 이는 장경판전의 위치 설정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장경판전은 해인사 내부 건물에서도 가장 구석, 가장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집에 비유하자면, 안방 혹은 사랑방에 해당하는 곳이 장경판전인 것이다.
장경판전은 불교 경전을 봉안한 곳으로서, 해인사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또한 장경판전은 상전과 하전으로 나뉜다. 상전은 법보전, 하전은 수다라장으로 명명되기도 했는데, 수다라장과 법보전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조다. 또한 마주보고 있는 이 두 채의 건물 양 끝에 동사간고와 서사간고가 각각 배치돼 있다.
판전 내부의 원활한 환기를 위해 창의 크기도 다르다. 창마다 공기 유입량이나 습도가 조금씩 다른데도 불구하고 창 크기가 같으면, 결국 공기가 한 쪽으로 정체되는 등 환기 문제가 발생해 대장경의 훼손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창 크기가 다르면 이러한 점을 자연스럽게 보완할 수 있어, 애초 설계 당시 이를 고려한 것이다.
창은 물론 판가(서가의 일종)까지 과학적으로 설계된 곳이 해인사 장경판전이다
아울러 판전 내부에 경판을 진열한 판가(서가의 일종) 역시 최적의 보전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창과 판가, 그리고 판전 건물의 입지 등이 삼박자를 갖춰 지금처럼 원형에 가까운 팔만대장경을 후대까지 길이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장경판전 내부의 팔만대장경은 지금까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팔만대장경이 집 주인이라면 장경판전은 집인 격인데, 집이 주인을 위해 그 역할을 잘 한 셈이다. 판전 내부의 팔만대장경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세계기록유산)인데, 장경판전 같이 과학적으로 설계된 건물이 아닌 곳에 보관됐어도 지금처럼 잘 보존됐을지는 생각해 볼 사항이다.
장경판전의 내일을 생각하다
인문학 분야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발간해 일약 스타작가 덤에 오른 후, 꾸준히 인문학을 설파하고 있는 교수 유홍준 씨의 글 중에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영주 부석사의 배흘림기둥을 답사한 유 교수가 자신의 감동을 기술한 책이다. 이 글이 유명해진 건 물론 저자 개인의 필력 탓도 크겠지만, 배흘림기둥이라는 문화재가 주는 고유의 문화적 감흥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처럼 문화재는 그 문화적 가치, 비중과 상관없이 보고 만지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곤 한다. 이는 긴 역사에 걸친 문화재일수록 더욱 그렇다 할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합천 해인사, 그 중에서도 장경판전이 우리 세대에 줄 수 있는 영향은 가히 크다 할 것이다. 팔만에 이르는 대장경일지언정 과연 적절한 ‘집’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보전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점을 상기하며, 다시 한 번 우리 문화재의 보전 필요성을 트래블투데이는 강조하고자 한다.
해인사와 함께 둘러보는 합천 관광명소
합천군에는 해인사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대장경에 대해 더욱 깊이있는 이해와 입체적 학습이 가능한 대장경테마파크, 불교 관련 지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성보박물관이 있다.
꼭 불교 소재가 아니더라도, 합천군을 즐길 수 있는 요소는 많다. 산세가 수려하고 물길 또한 아름다운 이 지역에는 합천댐이 있는데 이곳에 물문화관이 있어 둘러볼 만하다. 그런가하면 황매산은 가을 억새가 아름답기로 소문나 등산이나 트래킹 마니아라면 방문해볼 만하다.
만약 등산이 부담스럽거나 생태 관찰에 관심이 있다면 정양늪생태공원을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정양늪은 이 지역에서'생명의 텃밭'으로 통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생태계가 풍부한 곳이다. 징검다리와 물레방아 등 향토적 경관을 가감없이 만끽할 수 있으며, 특히 큰기러기 서식지가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수 세기에 걸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에 들른다면 한번쯤 장경판전에 대한 예의를 갖춰볼 것을, 트래블투데이는 추천합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6년 02월 1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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