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지역 문화재 중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는 총 3가지다. 등재 내역은 각각 한국의 역사마을 :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2010), 경주역사유적지구(2000), 석굴암, 불국사(1995)로서, 국내 세계문화유산(총 10가지) 중 무려 33.3퍼센트에 달한다. 그런데 정작 외국인 관광객들은 경북 지역을 얼마나 방문할까?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해 한국을 방문한 외래 관광객 중 경북 방문객은 약 15퍼센트에 불과하며, 그 중 경주 방문객은 16.9퍼센트, 안동(하회마을) 방문객은 5.5퍼센트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경북 지역이 갖는 역사적 가치가 큰 데 비해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률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트래블아이는 관광객 유입률 제고를 위한 선행단계로 해당 지역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을 ‘세계문화유산 경북편(上)’이라는 주제로 살펴보기로 한다. 경북지역 문화재인 석굴암, 불국사 등은 후에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한국여행 중 방문 권역(출처 : 2013 외래관광객 실태조사보고서)
경상지역 방문지(출처 : 2013 외래관광객 실태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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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류씨의 600년 집성촌인 안동하회마을에는 지금도 많은 고택이 남아있다.2
안동하회마을에는 기와집뿐 아니라 초가집도 남아있어 과거 조선시대 평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안동 하회마을은 조선 시대 명문가인 풍산 류씨의 600년 집성촌이다. 풍산 류씨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 등 여러 인물들을 배출했다. 서애는 하회마을 인근 병산서원에서 조선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의 지도를 받아 수학했으며, 훗날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에 천거해 임진왜란의 승전을 이끌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조선 유교문화의 산실인 서원
서원은 조선 시대 청년들의 유학교육과 유교 선현의 제사를 담당한 기관이다.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은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을 기리는 곳으로,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국정 개혁의 일환으로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병산서원은 철거 위기를 비껴갔다 하니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병산서원은 1572년 지어졌으며 만대루, 입교당 등 여러 부속 건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중 주목할 만한 곳은 만대루다. 만대루 2층에서는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데, 조선 양반의 풍류와 멋을 대변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또 다른 대표적 서원은 도산서원이다. 도산서원은 1557년 지어졌으며, 퇴계 이황을 기리는 서원이다. 도산서원과 퇴계 선생은 우리나라 국폐인 1000원 권에도 인쇄돼 있을 만큼 큰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곳이다. 조선 중기 성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 바로 퇴계 이황이기 때문이다. 도산서원 역시 서원철폐령의 위기를 모면했다.
부용대와 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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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에서는 나룻배를 타고 부용대로 건너갈 수 있다.2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을 끼고 걷는 길은 제법 운치있다.안동 하회마을을 한눈에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은 단연 부용대다. 부용대는 하회마을 맞은편 절벽에 있는 곳으로서 안동시내 방면에서 도로를 이용해 올 수도 있고, 하회마을에서 나룻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하회마을 입구에서 시계방향으로 돌아 나루터로 가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물과 모래사장을 감상할 수 있다.
하회탈춤이라고도 불리는 안동별신굿놀이는 양반을 풍자하는 놀이 특성상 재미있는 탈을 소재로 한다.
하회 별신굿 전승지인 안동 하회마을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다른 말로 ‘하회탈춤’이라고도 불린다. 하회탈춤은 우스꽝스럽게 생긴 하회탈을 쓰고 추는 춤인데, 지난 12세기부터 향유됐다고 전해진다. 주목할 만 한 점은 하회탈춤의 풍자성이다. 하회탈은 각시탈, 양반탈, 머슴탈 등 그 종류도 다양하며 춤의 내용은 양반을 숭상하는 것이 아닌 양반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양반 가문 집성촌에서 양반을 풍자하는 극이 오랫동안 전승됐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안동의 고택
안동에는 조선 중기 및 후기에 지어진 고택이 다수 남아있으며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하회마을 고택 중 규모가 가장 큰 북촌댁을 비롯, 하동고택, 작전고택, 남촌댁 등이다. 이 가운데 또한 북촌댁은 총 규모 72칸으로 하회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을 제외하고 지을 수 있는 최대 가옥규모가 99칸이었으므로, 이와 비교해 봐도 상당히 큰 규모이다. 많은 고택에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관광객들의 숙박이 가능한 곳도 있다.
월성 손씨, 여강 이씨의 집성촌인 경주 양동마을을 바라본 전경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가 총 117명이나 되며, 하회마을과 더불어 전국에서 손꼽히는 경북의 양반마을은 어디일까? 바로 경주 양동마을이다. 하회마을이 풍산 류씨의 단일 집성촌인 데 비해,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이성(二性) 집성촌이다. 두 가문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때로, 현재까지도 두 개 성씨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양동마을이 지금까지 그 원형을 보전하고 있는 것은 이곳이 한국의 전통적 ‘길지’로 꼽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역인 것도 그 근거라 하니, 이 역시 우리나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향단과 정자, 고택으로 살펴보는 경주 양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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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에는 많은 고택과 정자, 서당 등이 남아있다. 강학당도 그 중 하나다.2
양동마을 서백당은 오늘도 찾아온 손님들을 조용히 맞아준다.향단(香壇)은 조선 중종 때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노모를 위해 아우 이언괄에게 물려준 집이다. 향단은 역시 여러 채의 부속 건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예로 사랑채, 안채 등이 있다. 처음에는 궁궐 다음으로 큰 규모인 99칸으로 지어졌다고 하나, 한국전쟁 때 훼손돼 지금은 56칸으로 줄어들었다. 또 향단의 배치는 각각 월(月)자와 일(日)자로 복합돼 있는데, 이는 양기를 상징하는 해와 음기를 상징하는 달이 어우러지는 한국의 음양조화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한편, 양동마을에는 총 10개의 정자가 있다. 정자는 여백과 절제를 강조하는 동양미를 구현한 건축물인데, 양동마을의 정자도 예외가 아니다. 양동마을 정자는 안락정(安樂亭), 심수정(心水亭) 등 그 이름 또한 소담한데, 하회마을의 만대루와 마찬가지로 자연에 순응하고 풍류를 추구하는 양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양동마을 역시 조선 중, 후기에 지은 고택이 다수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고택으로 관가정, 근암고택, 낙선당 등이 있다. 역시 일부 고택에서 숙박체험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에 관해 알아봤다. 이 두 마을을 방문하지 않은 채 한국을 ‘잘 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한국 대도시의 도회적 세련미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들은 논외라 하더라도, 한국의 양반문화의 정수를 체험하고자 하는 관광객이라면 경북의 이 두 마을을 방문해봄이 마땅할 것이다. 한국 문화는 아직도 많은 부분 유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뿌리의 발원지가 바로 ‘양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태권도, 김치 등 한국 문화를 체험하려는 것이 아닌, 한국의 정신문화를 체험하고자 한다면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조선의 명문가인 풍산 류씨의 600년 된 집성촌과 조선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의 병산서원이 있는 안동하회마을,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117명을 배출한 경주 양동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런 문화재 입니다. 한국의 양반문화와 정신을 배우고 싶다면 경북지역으로 놀러오세요!
글 트래블투데이 이나래 취재기자
발행2014년 11월 24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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