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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곧 사람이라, 선병국가옥


최근 들어 고택과 한옥 탐방을 통해 전통문화를 느끼고 가옥 변화 과정을 엿볼 기회가 부쩍 늘었다.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의 선병국 가옥(국가중요민속자료 제134호)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 고택은 조금 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이 땅에 남아있는 개인주택 중 가장 큰 규모의 고택이기도 하거니와 조선 후기 전남 고흥을 본향으로 일대 치부를 이룬 보성 선씨 가문이 명당을 찾아 세웠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선씨 가문은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爲善最樂)이라는 가풍을 바탕으로 서당을 열어 방방곡곡 유능한 수재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소작농들에게 아낌없이 선정을 베풀기까지 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통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미덕을 실현하다

  • 선병국가옥은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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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병국가옥의 솟을대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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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병국가옥은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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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병국가옥의 솟을대문 전경.

선씨 가옥은 개화기인 1919년부터 1921년까지 3년에 걸쳐 지은 99칸의 호남 대표적인 양반집인 운조루의 형태를 띤다. 당시 가문을 이끌던 선정훈은 명당자리를 찾아 전국 여기저기를 뒤진 끝에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명당인 이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이 집은 전통가옥의 형태를 갖추면서도 시대 변화에 따른 건축기법의 변모를 잘 보여준다.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행랑채 등 부속건물을 갖추고 있다. 사랑채인 ‘도솔천’은 다향이 그윽하고 안채와 행랑채에는 문향이 넘쳐난다. 집을 둘러치고 있는 흙돌담은 화사한 황톳빛으로 아늑함을 더한다. 
 
하지만 양반가분의 고풍스러움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곳간 채에는 원통형의 뒤주가 놓여 있는데, 여기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말 그대로 ‘누구나 열 수 있다’는 뜻으로, 과거 이 집 주인이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마련해 둔 것이다. 쌀 세 가마니가 들어가는 이 뒤주에는 언제나 쌀을 가득 채워놓고 필요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와서 퍼갔다. 이 때 뒤주를 주인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외진 곳에 두었던 것도 쌀을 가지러 온 사람들이 계면쩍어하지 않도록 마음을 썼음을 엿볼 수 있다.
 

  • 선병국가옥의 정면(좌)과 측면(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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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병국가옥의 정면(좌)과 측면(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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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병국가옥의 정면(좌)과 측면(우) 모습.

운조루에서는 한 해 대략 200석의 쌀을 소출했는데 어떤 때는 전체 소출량의 20%를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솔밭에 자리 잡은 효열각과 시혜비는 마치 이 집에서 우러나오는 베풂의 미덕을 대변한다. 과거 이곳 소작농들이 집주인에게서 논밭을 골고루 나눠 받고 세금도 대신 내주고 소작도 크게 경감시켜 저들의 배고픔을 다 잊게 해줬다는 은혜를 시혜비로 대신한 것이다. 서당 ‘관선정(觀善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전통은 지금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곳간채를 개조한 고시원이 지금껏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 집을 거쳐 간 고시생이 1천여 명에 이르고 사법고시 합격자만 50명이 넘는다. 

 

장의 맛, 자연의 멋

  • 선병국 가옥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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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병국 가옥에서는 자연의 멋과 고건축물의 멋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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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병국 가옥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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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병국 가옥에서는 자연의 멋과 고건축물의 멋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수년 전에는 이 집의 간장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간장을 부어 만든 덧간장이 ‘350년 묵은 간장’이라 하여 한국 골동식품 예술전에 초대되었다가 한 대기업 회장에게 수백만 원대에 팔려나간 적도 있었다. 한국사람 입맛을 사로잡는 한식은 역시 ‘장’이 그 맛을 좌우한다. 선병국 가옥 역시 간장, 고추장, 된장 등 한 ‘장맛’ 한다. 현재 이 종가의 맛을 손에 쥐고 있는 보성선 씨 영흥공파 21대 종부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볶음고추장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 자체로 툭 떠서 밥에 비벼 먹거나, 떡만 넣고 간편하게 떡볶이를 만들어먹는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정작 선병국 가옥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것은 본디 외형적인 모습에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집에 담긴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집 주인은 서당을 열고 방방곡곡의 인재들을 모아 무료로 학문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가문에 딸린 소작농들에게 아낌없이 선정을 베풀기까지 했다. 비록 사람의 온기가 끊기긴 했지만 옛 살림의 속내 둘러보고 그 당시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럽고 그 전통과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기에 사랑스러운 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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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과 멋스러운 고택, 비교할 수 없는 장맛이 기다리고 있는 선병국 가옥! 우리 조상들의 숨결과 역사를 느끼고 싶다면, 보은 선병국 가옥을 찾아 보세요.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5년 09월 1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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