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과 상생을 염원하는 곳, 자인사
2000년, 새천년을 지나는 우리나라의 최대 화두는 ‘관심법(觀心法)’이었다. 당시 주말에 방영된 사극에 나왔던 이것은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누구의 얘긴지 아는가? 바로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다.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도 철원군 지역에 걸친 명성산과 한탄강, 그리고 자인사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은 궁예와 고려의 태조인 왕건의 전설과 민담이 1,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곳이기도 하다. 포천의 숨겨진 유적지, 자인사에 들러 궁예와 왕건의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인사, 그 역사 속으로
포천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있다. 산정호수. 깊은 산중에 자리한 이곳은 이름부터가 산(山)속의 우물(井)이다. 일제강점기에 농업용 저수지로 생겨난 곳이지만 워낙 물이 맑은 한탄간 자락에 자리한 명성산이고, 또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1977년부터 국민적인 관광지로 자리하게 되었다. 물론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뛰어난 점 역시 산정호수의 명성에 톡톡히 이바지했다. 산정호수가 포천의 밝은 현재를 보여준다면 자인사는 포천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물론 그 아픈 역사는 앞서 소개한 궁예의 이야기다. 폭군이었다 해도 일국의 왕이었던 사람이 모든 것을 잃고 죽어간 이야기는 당대를 살지 않은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 마련이다. 궁예가 죽고 왕건이 고려를 세운 후 산수가 아름다운 이곳에 신성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
그러나 산불에 소실되기도 하고, 거란과 몽골 등 외적의 침입, 결정적으로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 파괴되면서 자인사는 물론, 자인사가 소장하던 문헌과 역사적 기록들이 모두 소실되기에 이르렀고, 1964년에 이르러서야 절터만 남은 이곳에 현재의 자인사가 세워지게 되었다. 자인사의 이름은 궁예의 미륵세계와 자애를 상징하는 자(慈)와 1,000여 년이 흐른 지금에라도 궁예와 왕건이 화해하기를 기원하는 인(仁)을 합친 것이다. 왕권을 두고 치열하게 격돌했던 궁예와 왕건이 화해할 수 있다면 우리 중 누구인들 서로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겠느냐는 깊은 뜻이 숨겨진 이름이기도 하다.
화합과 상생의 절, 자인사
자인사로 가는 길에는 2km 남짓한 산책로가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솟은 소나무숲길은 절 입구까지 계속 이어진다. 오히려 그 거리가 짧게 느껴질 지경. 자인사에는 5.4m에 달하는 석고 미륵좌불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유명한 포대화상을 나타낸 것이다.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시주받은 것들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사람들을 가난과 배고픔에서 구원해주고 복을 주는 살아있는 부처님(生佛)로,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 미륵좌불 외에도 곳곳에 많은 석등과 탑 등이 가득하다. 극락보전 좌우 양편에 선 두 개의 장승은 다른 절들의 ‘사천왕상’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는데 벼락 맞은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실제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지만 규모에 비해 볼거리가 풍부해서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더구나 계절 따라 피는 꽃과 가득한 나무는 자인사의 풍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아픔은 모두 호수에 묻고, 자비를 생각하다
1
2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을 등 뒤에 놓고 산정호수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어 절의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명성산과 산정호수 일대가 모두 자인사의 경내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궁예와 왕건, 그들의 원한과 안타까움, 좌절과 성공 등 우리가 생각할 때 화합하기 어려운 가치들을 모두 포용하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작은 것 하나에도 쉽게 화를 내고, 사소한 것이라도 나와 다른 것이라면 경계하는 우리들에게 작지만 큰 절, 자인사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포천의 명소, 산 좋고 물 맑은 이곳에 자인사라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 혹시 모르셨다면 이 기회에 한 번 찾아보세요.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자인사가 주는 묵직한 메시지를 들으면 몸과 마음에 새로운 힘이 날 거예요. 불끈!
글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9년 08월 28 일자